☞ 보험가입자는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보험 대상자인 피보험자 관련 중요사항을 보험회사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고지의무 또는 계약 전 알릴의무라고 합니다. 고지의무를 준수하지 않으면 보험회사가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보험사고 발생 이후에 고지의무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이 해지된 때는 보험금 지급을 받을 수 없고, 이미 보험금을 받았다면 돌려줘야 할 수도 있습니다.
건강검진을 통해 확인된 의학적 소견이나 경미한 질환의 치료 이력은 고지의무 대상인 '중요한 사항'에 해당할까요? 법원은 정기 건강검진 담당 의사들이 작성한 의학적 소견과 피부질환과 같은 경미한 질환의 치료를 위한 투약 사실은 피보험자(박 모 씨)가 반드시 알려야 할 중요한 사항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사건 개요】
박 씨는 2023년 10월 현대해상과 보험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보험계약은 상해사망과 상해후유장해를 주계약으로 하고, 그 외 뇌혈관질환진단과 심혈관질환진단, 질병수술 등을 보장하는 여러 특약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박 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일반, 암(위, 대장)' 항목에 대한 정기 국가 건강검진 대상자에 해당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이 보험계약 체결 하루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정한 병원을 방문해 소화기내과에서 위 내시경 검사, 호흡기내과에서 폐 검사를 예약하고 진료를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화기내과에서는 '화생성위염, 위이형성증, 역류성식도염'의 소견을, 호흡기내과에서는 '상세불명의 기침' 소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박 씨는 보험계약 체결을 위한 청약서를 작성하면서 주요 질문 항목들에 대해 모두 '아니오'로 답변했습니다.
이후 박 씨는 2023년 12월 '상세불명의 위의 악성신생물(위암)' 진단을 받았고, 2024년 1월 점막하 박리 절제술을 받고 퇴원한 후 현대해상에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현대해상은 2024년 2월 계약 해지를 통보하며, 두 가지 사유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박 씨가 보험계약 체결 전 최근 3개월 이내에 호흡기내과에 폐 검사로 내원해 건강검진을 예약하고 의학적 소견을 받았음에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점(제1해지사유)과, 2019년 2월부터 2023년 7월까지 피부과의원에서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으로 14회 통원하며 30일 이상 약물 처방을 받았던 점(제2해지사유)을 문제 삼았습니다.
박 씨는 이에 대해 정기검진을 받기 위한 절차의 일환이었을 뿐이며, 질병 의심에 따른 구체적인 검사나 치료를 받기 위한 내원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의사로부터 진단서, 소견서, 진료의뢰서를 포함한 어떤 서면(전자문서 포함) 형태의 질병 의심 소견도 받은 사실이 없어 청약서상 고지 대상인 '질병의심소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의 경우도 보험계약의 보장 사항에 포함되지 않고, 중요한 사항에도 해당하지 않으며, 중요한 사항에 해당하더라도 이를 인식하지 못한 것에 고의 또는 현저한 부주의가 없었으므로 계약 전 알릴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법원 판단】
재판을 맡은 수원지법 안산지원 제2민사부[재판장 임정택 부장판사]는 박 씨가 현대해상화재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계약 해지 의사표시의 무효를 구하는 보험에 관한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하며 박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1)
상법 제651조와 제651조의2의 법리에 따라, 보험계약 체결 전 알릴 의무는 보험사가 보험계약의 인수 여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만한 '중요한 사항'만 포함된다고 판시했습니다. 또한 청약서상 '계약 전 알릴 의무사항'에 명시된 '질병의심소견'은 단순 진료기록에 기재된 내용이 아니라, 의사가 진단서나 소견서, 진료의뢰서 등을 미리 서면이나 전자문서 형태로 교부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박 씨가 보험계약 체결 전인 2023년 10월 30일 진료 당시 담당 의사들의 소견을 서면이나 전자문서 형태로 교부받지 않았고, 계약 이후인 2024년 1월 22일 진료기록을 일괄 발급받아 그때까지 작성된 진료기록 내용을 확인했다는 사정 등을 고려했습니다. 따라서 이 같은 사정에 주목해 제1해지사유는 고지의무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 치료 이력에 대해서도 보험계약에서 특별히 보장하려는 뇌혈관질환, 심혈관질환, 중증질환, 120대 질병에 해당하지 않으며, 보험금 지급 제외 규정에서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는 피부질환의 범주에 직접 해당하거나 그와 유사한 경미한 질환으로 평가했습니다. 따라서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으로 30일 이상 투약한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고지의무위반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현대해상이 주장한 두 가지 해지 사유는 모두 배척됐고, 계약 해지 통지는 무효가 됐습니다. 이 판결에 대해서는 현대해상이 항소를 제기하지 않아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 보험계약의 해석에 있어서는 '평균적 보험계약자의 이해 가능성'을 기준으로 문언을 객관적이고 획일적으로 해석해야 하지만, 그 의미가 불명확하거나 두 가지 이상의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경우에는 약관 작성자인 보험사에게 불리하게 해석해야 합니다.
이런 법리에 따라 이 판결은 청약서상 '3개월 이내 의사로부터 진찰 또는 검사'에 건강검진이 포함된다고 명시돼 있지만, 그런 진찰 또는 검사를 통한 의료행위의 일종인 '질병의심소견'이란 의사가 진단서나 소견서 또는 진료의뢰서 등을 포함해 서면(전자문서 포함)으로 교부한 경우를 말하므로, 의사가 진단서나 소견서, 진료의뢰서 등을 피보험자 측에게 미리 서면이나 전자문서 형태로 교부한 사실이 없다면 고지의무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시했습니다.
다만, 제2해지사유인 피부과의원에서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으로 14회 통원하며 30일 이상 약물 처방을 받았던 사실의 경우에는 해당 문언상 '같은 원인으로 치료 시작 후 완료일까지 실제 치료, 투약 받은 일수'에 해당하는 만큼 판결의 결론에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지의무위반은 인정되지만 보험사고(보험금 지급사유)와 해지사유 간에는 인과관계 없다는 견해가 그것인데, 이 같은 견해에 의하더라도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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