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번개탄 피워 일산화탄소 중독사 "극심한 피해망상 상태서 감행했다면 재해사망보험금 지급"


글 : 임용수 변호사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쳐서 숨지게 되면, 보험사들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습니다. 상법과 보험약관에서 면책사유로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극심한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보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경우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남편과 함께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 모 씨1)의 이야기입니다.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가 김 씨와 관련된 판결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고, 쉽게 해설해 드립니다. 보험소송을 의뢰하거나 보험 법률상담이나 보험법 자문[의견서 작성]을 진행하고 싶은 분들은 보험사고와 관련된 자료 일체를 지참하고 방문해주세요. 

김 씨는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했는데, 평소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외출은 거의 없었고, 휴대전화를 이용해 인터넷 쇼핑몰의 판매 물품을 관리하는 등 일과의 대부분을 주거지에서만 보냈습니다. 김 씨는 2014년 12월 한 신경정신과의원을 방문해 불면, 우울감 등을 호소했고, 불면증, 우울에피소드를 진단받아 항불안제, 항우울제 등의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무렵부터 2018년 7월까지 약 50회에 걸쳐 정신과 상담 및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김 씨는 2018년 3월부터는 남편에게 "휴대전화가 해킹당했다"고 말하거나 경찰에 '누가 집에 침입을 하고 해킹을 했다'는 취지의 신고도 했습니다. 그녀는 사고가 있기 3달 전부터 남편과 자주 싸웠고, 남편이 사고 전날 저녁 외출을 나갔다가 김 씨와 전화통화로 다툰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번개탄을 한 묶음 사왔습니다. 김 씨는 남편이 집에 도착한 직후 또 말다툼을 했고, 남편은 다시 집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김 씨는 남편이 집에서 나간 사이 안방 화장실에서 번개탄을 피워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는데, 자살하기 직전에 작성한 김 씨의 유서에는 "내가 죽어도 모든 의문과 억울함을 풀어주면 좋겠습니다"라는 등의 내용이 기재돼 있었습니다. 

김 씨 남편은 한화생명보험과 2005년 10월 주피보험자를 김 씨로 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했고, 재해로 사망하게 되면 1억 원을 지급받는 '재해사망특약'도 넣었습니다. 김 씨 남편은 2018년 8월 한화생명에 재해사망보험금을 청구했으나, 경찰의 수사가 종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송 처리됐습니다. 

1개월 뒤 경찰은 김 씨가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앓고 있던 중 스스로 신병을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판단하고는 변사사건을 종결했습니다. 이에 김 씨 남편이 보험금 지급을 다시 청구했지만, 한화생명은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라는 면책사유에 해당한다며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김 씨 남편은 사고 당시 불면증, 피해망상, 우울증 등 중증의 정신질환을 앓던 중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보험계약에서 정한 재해사망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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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지법 마산지원[재판장 김영욱 부장판사]은 유서를 쓰고 자살한 김 씨의 남편이 한화생명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김 씨 남편에게 1억여 원을 지급하라"면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2)

재판부는 「망인의 정신질환은 계속된 정신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호전 없이 악화돼 사고 당시는 해킹, 침입 등의 피해망상을 동반한 극심한 상태로 진행된 것으로 보이고, 사고가 발생할 무렵에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 정신질환의 영향으로 인해 신체적, 행동적인 면에서도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비록 망인이 자살하면서 유서를 남기기는 했으나, 그 내용은 망인과 별다른 교류가 없었던 남편의 지인들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일 뿐 망인의 신변 정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이를 들어 망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자살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망인은 사고 당시 피해망상을 동반한 주요우울증 등 중증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이런 정신질환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자살을 감행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따라서 이 사고는 약관 중 재해분류표의 재해로 규정된 '연기, 불 및 불꽃에 노출'로 발생한 것이므로, 한화생명은 김 씨 남편에게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서 피보험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 의무를 부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직접적인 원인 행위가 외래의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그 사망은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하지 않은 우발적인 보험사고로서의 사망 또는 재해사망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3) 이 판결에서는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외래 요인을 생명보험약관 재해분류표에 열거된 재해 중 '연기에 노출' 항목으로 적시했습니다.

이런 유형의 사고에서는 주요우울장애와 자살의 관련성에 관한 의학적 판단 기준이 확립돼 있으므로, 사실심 법원으로서는 주요우울장애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자살했다고 볼 만한 의학적 견해가 증거로 제출됐다면 그 견해를 존중해야 하며 함부로 이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만약 법원이 그런 의학적 소견과 다르게 인과관계를 추단하려면 다른 의학적·전문적 자료에 기초를 두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4) 

밀폐되거나 밀봉된 장소에서 번개탄을 피웠던 사례와 관련된 하급심 판결 중에는 교통사고를 낸 자동차 안에서 번개탄 및 타다 남은 유서가 발견됐다고 하더라도 번개탄을 피운 채 운전함으로써 사고를 발생케 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이유로 고의 사고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것이 있습니다.  


번개탄을 피우는 밀폐된 장소로는 주택 또는 모텔 등의 실내뿐 아니라 차량 내부도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만난 사람들끼리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소식들이 인터넷이나 TV 등에 자주 등장합니다. 

판례는 자살의 의사를 밝힌 유서와 같은 객관적인 물증의 존재가 증명되면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한 자살'로 봐야 한다고 판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피보험자가 조현병[調絃病, schizophrenia] 환자라는 사실 또는 이 사안의 경우처럼 사고 당시 "극심한" 우울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유서가 발견됐다고 하더라도 우발적인 보험사고로 인정할 때가 간혹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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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21년 11월 19일

1) 호칭의 편의상 피보험자에 대해 원고의 성씨를 사용합니다.
2) 확정된 판결입니다.
3) 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3다18929 판결 참조.
4) 동지: 대법원 2021. 2. 4. 선고 2017다281367 판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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