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용수 변호사
자동차 운전자가 다른 2대의 승용차를 연속적으로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냈고 또 자동차 안에서 번개탄 및 타다 남은 유서가 발견됐다고 하더라도, 번개탄을 피운 채 운전함으로써 사고를 발생케 해 사망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이유로 고의 사고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교통사고 당시 이 씨가 운전하던 뉴프라이드 승용차에서 번개탄 및 타다 남은 유서가 발견됐고, 이 씨가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 있었던 사실이 인정되나, 다른 한편 교통사고 발생 당시 이 씨의 승용차에서 발견된 번개탄은 연소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연소되고 남은 것이었고 교통사고로 인한 차량들의 손괴 정도나 이 씨 등의 상해 정도가 비교적 경미한 사실도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번개탄을 피운 채 운전하다 사고를 발생하게 해 사망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것은 이례적이므로, 앞서 인정한 사실만으로는 이 씨가 자살을 시도한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넘어 교통사고가 자살의 수단 등으로서 이 씨의 고의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자살에 실패했거나 자살을 포기하고 승용차를 운전했을 가능성 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이 씨가 일으킨 교통사고에는 '자기신체사고' 및 '자기차량손해'에 관한 면책약관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면책약관이 적용됨을 전제로 한 악사손해보험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씨는 지난해 12월 말 오후 2시에 아내 소유의 뉴프라이드 승용차를 운전해 의정부시 도로를 만가대 방면에서 신곡지하차도 방면으로 진행하던 중 BMW750 승용차를 충격했고, 계속 진행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해 맞은편 1차로를 진행하던 K5 승용차를 다시 충격한 뒤 상해를 입었습니다. 그 후 이 씨가 보험금을 청구하자 악사손해보험은 이 씨가 고의로 상해나 손해를 입었기 때문에 이씨 부부에게 보험금을 지불할 수 없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보험회사가 보험금 지급 책임을 면하려면 유서 등 자살을 했다는 객관적인 물증이나 일반인의 상식에서 자살했을 가능성에 대한 주위 정황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이 사건의 경우 객관적인 물증인 '유서' 및 자살의 도구인 '번개탄'과 번개탄을 피울 밀폐된 공간인 '자동차'가 발견됐지만, 재판부는 교통사고가 이 씨의 고의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례적'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판시 내용에 비춰 볼 때, 이 재판부는 아마 교통사고나 자동차는 자살(시도)이나 자해의 수단 또는 도구가 되기 어렵다는 가치관이나 관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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