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 해설
간편종합보험에 가입한 보험 가입자가 황달 증상 등을 보여 간기능(혈액) 검사를 받은 사실을 보험사에 알리지 않았더라도 고지의무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가 판결을 [단독] 소식으로 소개하고 해설을 덧붙인다.
지난 2023년 12월 정 씨는 보험모집인 변 모 씨를 통해 흥국화재에 간편종합보험에 가입했다. 이 보험계약에 따르면 정 씨가 암에 대한 진단확정을 받으면 흥국화재로부터 보험금(암진단비) 3000만원을 지급받게 돼 있었다.
이후 정 씨는 한 병원에서 '담도의 기타 질환'을 진단 병명으로 하는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아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응급실에서 복부 CT 검사를 받았고 이후 조직검사를 거쳐 2024년 1월 '총담관의 암'을 진단받았다. 이에 정 씨는 기존에 들어놨던 보험을 근거로 흥국화재에 암진단비 3000만 원을 청구했다.
그런데 흥국화재는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고 오히려 이 보험계약을 해지했다며 정 씨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채무부존재확인 청구 소송을 냈다.
흥국화재가 문제 삼은 건 보험 가입 직전 정 씨가 보였던 황달 등의 증상이었다. 당시 정 씨는 보험모집인 변 씨에게 "주변 사람들이 얼굴색이 좋지 않다고 이야기해서 전날 병원에서 피검사를 받았다(병력)"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 씨의 병력이 '계약전 알릴 의무사항'이 정한 질문 항목에 해당하지는 않았다. 흥국화재는 이런 사실을 보험계약 당시 가입자가 보험사에 알려야 하는 '계약 전 알릴 의무', 다른 말로 고지의무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를 알리지 않았음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하거나 취소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흥국화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한철 부장판사는 「정 씨가 황달 소견이 보여 간기능(혈액) 검사를 받은 사실이 중요한 사항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다투지 않고 있으므로, 고지의무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사항에 관해 보험사에게 고지했다고 볼 수 없다」면서도 「다만 그런 경우에도 보험사가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하기 위해서는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그런 사항이 고지를 요하는 중요한 사항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고의로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이를 알지 못해 고지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실이 증명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보험계약은 '계약전 알릴 의무사항'에 대해 '예' 또는 '아니오'를 고르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질문사항 외의 중요사항을 기재하는 칸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으며, 정 씨가 질문받은 사항 외의 중요사항에 대해서 고지를 받았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보험사가 보험청약서에 미리 고지할 사항을 열거해 질문란을 둔 이른바 질문표를 이용하는 것이 실무상 관행이고, 이 보험계약은 흥국화재가 자신의 계산 하에 간소화된 질문 항목으로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설계한 상품인바, 이런 사정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흥국화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정 씨가 자신의 병력이 고지를 요하는 중요한 사항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고의로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이를 알지 못해 고지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며 「따라서 흥국화재는 고지의무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 해설
이 사례에서 정 씨가 가입한 보험계약은 간편종합보험으로써, 기존 병력으로는 가입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계약 전 알릴의무 사항 등 계약심사 및 건강검진의 부담을 낮춰 간소화된 질문 항목으로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돕는 상품이다.
이 보험상품의 보험청약서 '계약전 알릴 의무사항' 중 가입자의 병력(病歷)에 대한 질문표에는 ① 의사로부터 3개월 이내 입원·수술·추가검사(추가검사) 필요 소견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 ② 최근 5년 이내 질병이나 상해사고로 인해 입원 또는 수술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 ③ 최근 5년 이내 암, 협심증, 심근경색, 간경화, 뇌졸중증[뇌출혈, 뇌경색], 심장판막증으로 진단받거나 입원 또는 수술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의 3가지뿐이고, '예' 또는 '아니오'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을 뿐, 질문 사항 외의 중요사항에 대해 언급하거나 이를 기재하는 칸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고지의무를 지는 보험 가입자는 보험전문가가 아닌 이상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에 대해 고지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실무에서는 보험사가 보험청약서에 미리 고지할 사항을 열거하는 질문란을 둔 이른바 질문표를 이용하는 것이 관행이고, 보험사가 계약 체결 당시 서면으로 질문한 사항은 중요사항으로 추정된다. 질문표 등의 서면에 기재(질문)되지 않는 사항도 예외적으로 중요사항으로서 고지의무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질문표 등의 서면으로 질문하지 않은 사항이 중요한 사항이라는 것과 보험 가입자가 고의 또는 중과실로 불고지했다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보험사가 주장·입증해야 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