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직장 내 괴롭힘 우울증 심해져 헬륨가스 이용 '극단적 선택'… KB라이프생명, 보험금 지급 판결


글 : 임용수 변호사


직장 내 괴롭힘으로 우울증이 심해져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전에 준비한 헬륨가스를 이용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면, 보험사가 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사고가 약관상 보험금 지급 사유에 해당하는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에 해당하고, 면책조항인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가 판결의 주요 내용을 알리고 해설을 덧붙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1단독 윤성헌 판사는 콜센터 상담원이었던 홍 모 씨의 유족1)이 사망보험금을 달라며 KB라이프생명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KB라이프생명은 원고에게 1억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판결 한 것으로 밝혀졌다.2) 

홍 씨는 지난 2001년 KB라이프생명과 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자신이 재해로 사망할 경우 보험금 1억 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재해사망특약을 부가했다. 

홍 씨는 2018년 6월 성남시 직영 콜센터 상담원으로 입사한 지 1년 반만인 지난 2019년 12월 자택에서 얼굴에 비닐을 덮어쓰고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부검 결과 사인은 '헬륨가스 흡입에 의한 산소결핍성 질식사'로 밝혀졌고, 타살 및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홍 씨는 근무 기간 중 관리자의 공개적인 지적과 모욕, 업무 배제 등으로 과거 앓던 우울증이 심화돼 수차례 정신과 치료 등을 받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유족은 2021년 1월 홍 씨의 사망은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산업재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청구했고, 근로복지공단은 5개월 뒤인 2021년 6월 홍 씨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유족(홍 씨의 아들)은 홍 씨가 가입했던 재해사망특약에 근거해 보험금을 청구했는데, KB라이프생명으로부터 면책사유인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한다며 보험금 1억 원의 지급을 거절당하자 이에 반발해 KB라이프생명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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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과정에서 유족은 "홍 씨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심화돼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며 "홍 씨의 사망은 특약상 '재해사망'에 해당해 면책조항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KB라이프생명은 재해사망보험금 1억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KB라이프생명은 "홍 씨의 극단적 선택은 특약에 따른 보험금 지급 사유인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에 해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홍 씨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로서 면책사유에 해당하며, 홍 씨가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 아니므로 면책사유의 예외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맞섰다.

윤 판사는 판결문에서 「홍 씨가 헬륨가스통 대여업체에 문의하고, 헬륨가스통을 배달 받은 다음날 이를 이용해 본인의 방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홍 씨는 콜센터에 근무하면서 업무 배제, 징계위원회 회부, 해고 처분 등으로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그로 인해 앓고 있던 우울증이 악화돼 정신적 억제력 및 현실 판단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에 나아간 것으로 보이므로, 홍 씨가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봤다.

이어 「홍 씨는 2018년 6월부터 콜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조직 내의 비합리적인 운영 행태, 관리자 등의 공개적인 지적, 모욕, 업무 배제, 업무 질책 등으로 인해 우울감, 자괴감 등의 증상이 발현 내지 악화됐고, 혼합형 불안 및 우울병 장애 등으로 2019년 한 해 동안만 25차례 이상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홍 씨의 진료기록을 감정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홍 씨는 당시에 우울증이 심화되고 음주로 인해 충동조절력이 저하됐으며, 정신병적 상태의 현실 판단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오로지 자신의 생명을 끊을 생각만을 하고 이를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도구와 방법 등을 선택해 여러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사료된다"며 "홍 씨의 극단적 선택의 방법이 계획적이었다는 사정만을 가지고 홍 씨가 정상적인 상태에서 사고에 이르렀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아울러 윤 판사는 「홍 씨의 업무 스트레스가 우울증 등 정신질환 악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고, 2개월 남짓 동안 연달아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홍 씨에게 견딜 수 없는 정신적 압박을 가했고, 이로 인해 홍 씨의 정신질환도 급격히 악화됐을 것」으로 추단했다.  

윤 판사는 또한 「'고의로 인한 보험사고'를 보험금 지급 사유에서 제외하는 이유는, 피보험자가 고의로 보험사고를 일으키는 것이 보험계약상의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고 그러한 경우에도 보험금이 지급된다면 보험계약이 보험금 취득 등 부당한 목적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데, 홍 씨가 특약 등 보험계약을 의식하고 부당한 목적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볼 만한 증거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직접적인 사망을 야기한 사고는 헬륨가스 흡입이라는 외부적 행위에 의한 것」이라며 「홍 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가 외부적 요인에 인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이상, 홍 씨의 사망사고는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하지 않은 우발적인 사고로서 '재해'에 해당하며, 면책사유인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통상 극단적 선택의 방식으로 사전에 준비한 도구를 이용하는 경우 법원은 계획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피보험자의 극단적 선택 방식이 계획적이었다는 사정만으로는 피보험자가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단언할 수 없다는 취지의 진료기록 감정의의 의견이 있었던 사례이고 법원은 그와 같은 감정 의견을 십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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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23년 8월 12일

1) 피보험자 호칭의 편의상 원고의 성 씨를 사용한다.
2)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4. 21. 선고 2021가단5306426 판결. KB라이프생명이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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