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판결) 법원, 고지의무 위반 사실만으로는 보험의 본질 침해하는 다른 부가적 사정 없이 바로 보험사기 안돼

글 : 임용수 변호사


보험계약자가 보험계약 당시 피보험자의 과거 병력에 관해 고지의무를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보험사고의 우연성'과 같은 보험의 본질을 해할 정도가 아닌 경우라면 보험금 편취를 위한 기망 행위가 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보험계약자가 단지 과거 입원 사실 및 기왕 병력 등을 알리지 않았더라도 보험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증빙 서류 조작이나 타인의 인적 사항 도용과 같은 별도의 적극적인 기망 행위를 했다는 부가적인 사정이 없는 경우에는 보험계약이 사기 행위로 인해 체결됐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임용수 변호사(보험전문)가 판결 내용을 [단독] 소식으로 알려 드리고 해설합니다.

서울고법 민사33부(재판장 이경춘 부장판사)는 엘아이지손해보험이 이 모 씨를 상대로 낸 계약 무효 확인 등 청구 소송의 항소심에서 엘아이지손해보험의 항소를 기각하고 이 씨의 손을 들어줬던 원고패소의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고 밝혔습니다.1)

이 씨는 2009년 11월 엘아이지손해보험과 보험계약을 체결했고, 보험계약 기간 만료 후 다른 보험계약으로 자동갱신 됐습니다. 그 후 이 씨는 2010년 5월부터 54일간 한 의원에서 '목뼈의 염좌 및 긴장 등'의 병명으로 입원 치료를 받은 것을 비롯해 그 때부터 2012년 3월까지 총 251일간 입원 치료를 받았고, 엘아이지손해보험은 합계 1288만 원을 보험금으로 지급했습니다. 

이 씨는 1999년 7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여러 보험회사들과 사이에 총 8건의 보험계약을 체결했고(중도해지 등을 제외하고 나면 현재 유지 중인 계약은 3건), 1998년 9월부터 2013년 2월까지 1억 2400여만 원의 보험금을 수령했습니다.

재판부는 「보험계약자가 보험금을 부정 취득할 목적으로 다수의 보험계약을 체결한 경우, 이러한 목적으로 체결된 보험계약에 의해 보험금을 지급하게 하는 것은 보험계약을 악용해 부정한 이득을 얻고자 하는 사행심을 조장함으로써 사회적 상당성을 일탈하게 될 뿐만 아니라, 또한 합리적인 위험의 분산이라는 보험제도의 목적을 해치고 위험 발생의 우발성을 파괴하며 다수의 선량한 보험 가입자들의 희생을 초래해 보험제도의 근간을 해치게 되므로, 이 같은 보험계약은 민법 제103조 소정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해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 2005다23858)을 인용했습니다.


또 「보험계약자가 그 보험금을 부정 취득할 목적으로 다수의 보험계약을 체결했는지에 관해서는 이를 직접적으로 인정할 증거가 없더라도, 보험계약자의 직업 및 재산 상태, 다수의 보험계약 체결 경위, 보험계약의 규모, 보험계약 체결 후의 정황 등 제반 사정에 기해 그 같은 목적을 추인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이 씨가 이 보험계약을 포함해 1997년경부터 약 13년간 8건의 보험계약을 체결한 바 있고, 다수의 보험계약에 따라 1998년 9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총 1억2400여만 원의 보험금을 수령한 사실, 이 보험계약 체결 당시 이 씨가 이미 가입한 상태에 있었던 다수의 보험들은 모두 재해 또는 질병으로 수술, 입원할 경우 일정 금액을 보장하는 내용의 보험으로서 이 보험계약과 보장 내용이 유사한 사실, 이 씨가 1998년 9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합계 1억2400여만 원 상당의 보험금을 지급받은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가 가입한 보험의 수는 현재까지 해지된 보험도 포함해 총 8건으로서 사회통념상 특별히 과다하다고 보기 어렵고, 가입 기간도 1997년부터 2012년에 걸쳐 고르게 분포돼 있는 점, 이 씨가 현재 부담하고 있는 월 보험료는 130,550원으로 이 씨의 직업이나 소득 수준에 비춰 과다하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이 씨가 청구한 보험금 지급 사유들은 대부분 의사의 진단을 통해 확인된 것으로서 이 씨가 임의로 보험사고를 가장하거나 과장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는 점, 이 보험계약 체결 당시 가입돼 있었던 보험들에 기한 상해 일당은 10만 원, 질병 일당은 12만 원에 불과한 점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면, 의심스러운 사정들만으로 이 씨가 보험금을 부정 취득할 목적에서 이 보험계약을 체결했다고 단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습니다. 

한편 재판부는 「보험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중요한 사항에 관해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 위반이 사기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보험자는 민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그 보험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 91다1165)을 인용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고지의무 위반이 있더라도 그 보험금은 보험계약의 체결만으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한 사고가 발생해야만 지급되는 것이므로, 상법상 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사정만으로 보험계약자에게 미필적으로나마 보험금 편취를 위한 고의의 기망행위가 있었다고 단정해서는 안되고, 더 나아가 보험사고가 이미 발생했음에도 이를 묵비한 채 보험계약을 체결하거나 보험사고 발생의 개연성이 농후함을 인식하면서도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또는 보험사고를 임의로 조작하려는 의도를 갖고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와 같이 그 행위가 '보험사고의 우연성'과 같은 보험의 본질을 해할 정도에 이르러야 비로소 보험금 편취를 위한 고의의 기망 행위를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 2010도6910)도 인용했습니다.


특히 「이 씨의 중복보험 가입 여부나 종전 치료 및 수술 등 병력은 엘아이지손해보험이 보험계약을 체결할 것인지 여부와 그 내용을 결정함에 있어 중요한 사항이므로 이 씨가 상법 제651조 소정의 고지의무를 위반했음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으나, 보험계약자가 계약 체결 당시 보험계약의 '중요한 사항'을 보험회사에게 알리지 않은 경우에 상법 제651조의 고지의무 위반 규정에 따라 보험계약을 해지함을 넘어 민법 제110조를 적용해 보험계약을 취소하는 것까지 무한정 허용한다면, 상법 제651조가 민법과 별도의 규정을 둬 보험자의 해지 기간을 제한하고, 고지의무 위반과 보험사고 발생 간의 인과관계가 없는 경우에는 해지의 소급효를 제한(상법 제655조 단서, 제651조)하고 있는 상법 규정들의 취지를 몰각하게 될 우려가 있다」며 「따라서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다른 부가적인 사정없이 단지 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사정만으로 보험계약이 보험계약자 등의 기망으로 체결됐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보험계약 당시 이 씨가 중복 보험 가입 여부나 기존 병력 등이 없는 것처럼 허위로 답변한 사정 이외에 보험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증빙 서류 조작이나 타인의 인적 사항 도용과 같은 별도의 적극적인 기망 행위를 했음은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임용수 변호사의 케이스메모


보험 가입 당시 보험계약자가 숨기는 「사기 의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만성 활동성 B형 간염 치료 사실 불고지, 기망 행위 안돼'라는 판결 소식과 관련해 해설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보험 가입자가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고지의무(계약 전 알릴의무)를 위반했더라도 그 보험금은 보험계약의 체결만으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한 사고가 발생해야만 지급됩니다. 따라서 고지의무를 위반해 보험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정만으로 보험계약자에게 미필적으로나마 보험금 편취를 위한 고의의 기망 행위가 있었다고 단정해서는 안됩니다. 보험계약 체결 시 고지의무는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의 의무이지만 그것을 위반했다고 해서 다른 부가적인 사정 없이 바로 기망 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 판결의 취지에 의하면, 보험회사가 보험 가입자의 기망 행위가 개재됐음을 이유로 계약을 취소하려면 고지의무 위반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 고지의무 위반 행위가 '보험사고의 우연성'과 같은 보험의 본질을 해할 정도의 보험금 편취를 위한 고의(= 뚜렷한 사기 의사)가 있었다는 점도 증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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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등록일 : 2018년 4월 21일
  • 1차 수정일 : 2020년 8월 7일(재등록)

1) 서울고등법원 2014. 11. 11. 선고 2014나2021388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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