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자의 법정면책사유



1. 인위적인 보험사고(고의·중과실 면책)

가. 보험사고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71)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생긴 때는 보험자는 보험금액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상법 제659조).

이는 보험사고는 우연한 것이어야 하는데, 피보험자 등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보험사고를 야기한 경우에는 보험사고로서의 우연성을 결할 뿐 아니라, 비도덕적이고 선량한 풍속에도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에까지 피보험자 등을 보호할 필요가 없어 면책사유로 한 것이다.

나. 「고의」라 함은 「자신의 행위에 의하여 일정한 결과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알면서 이를 행하는 심리 상태」를 말하며,72) 여기에는 확정적 고의는 물론 미필적 고의도 포함된다. 이러한 고의 행위를 함에 있어서는 피보험자 등에게 책임능력이 있어야 한다.73)

고의는 원인 행위에 존재하면 충분하고, 그 결과의 발생 또는 보험금 취득에 대한 고의까지 필요한 것은 아니다.74) 다만 면책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결과에 대한 피보험자의 인식과 의도를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원인 행위는 단순한 조건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보험사고의 원인이어야 한다. 즉 원인 행위로 인하여 그 즉시 보험사고를 야기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되돌릴 수 없는 절대적·치명적 손상을 일으키거나, 원인 행위로 인한 잠정적 손상이 불러오는 전형적인 위험의 경과로서 보험사고의 발생을 회피할 수 없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보험자의 면책사유인 고의에 의한 보험사고에 해당한다.

고의와 같은 내심의 의사는 이를 인정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에는 사물의 성질상 고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입증할 수밖에 없고,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사실관계의 연결 상태를 논리와 경험칙에 의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75)

보험사고의 발생에 기여한 둘 이상의 원인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피보험자 등의 고의 행위가 단순히 공동 원인의 하나이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보험사고 발생의 유일하거나 결정적 원인이었음을 입증해야만 보험자는 면책될 수 있다.76)

다. 「중대한 과실」이라 함은 「통상인에게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주의를 현저하게 게을리 한 경우」를 의미한다. 예컨대 피보험자가 판단능력을 상실 내지 미약하게 할 정도로 과음을 한 상태에서 출입이 금지된 지하철역 승강장의 선로로 내려간 경우, 횡단보도 이외의 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에서의 무단횡단을 한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피보험자 등의 가벼운 과실(경과실)로 보험사고가 생긴 때는 보험자는 면책되지 않고 보험금지급책임을 진다. 경과실로 보험사고가 발생하여 책임을 지는 보험자는 민법상의 과실책임이론과는 달리 과실상계를 주장하지 못한다.

다만, 사망보험과 상해보험의 경우에는 보험계약자, 피보험자 또는 보험수익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사고에 대해서도 보험자의 보험금지급책임을 인정하고 있다(상법 제732조의2, 제739조). 즉 사망보험과 상해보험에서는 보험사고가 피보험자 등의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생긴 때도 보험자는 면책되지 않는다. 이는 보험계약자 측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특히 보험수익자인 유족 등의 생활보장을 도모하기 위한 정책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다.77)

이에 의하면 피보험자가 달리는 차 안에서 부부싸움을 하다가 극도의 흥분된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뛰어내려 도로에 머리를 부딪쳐 사망한 경우나 만취상태에서 운전 중에 자동차 추락 사고로 사망한 경우에도, 보험자가 유서 등 객관적인 물증의 존재나 일반인의 상식에서 고의 사고가 아닐 가능성에 대하여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주위 정황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

라. 보증보험의 경우에는 주계약상의 채무자인 보험계약자의 채무불이행을 보험사고로 하는 특성상 보험계약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생긴 보험사고에도 보험자는 보험금지급책임을 부담한다. 판례도 「보험계약자의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보험사고의 경우 보험자의 면책을 규정한 상법 제659조 제1항은 보증보험의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적용이 없다」고 판시하여, 보증보험의 특성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78)

마. 피보험자를 해친 보험수익자가 보험금의 일부 보험수익자인 경우 고의로 보험사고를 일으키지 않은 다른 보험수익자는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상세한 사항에 관하여는 나중에 보험과 상속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2. 대표자책임이론


가. 의의

대표자책임이론이란 보험사고가 피보험자 등과 법률상 또는 경제상 특별한 관계에 있는 자(가족이나 고용인79) 등)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발생한 때도 피보험자 등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과 동일시하여 보험자가 면책된다는 것으로, 독일 판례에서 나온 해석상 이론이다. 국내의 보험약관에도 보험사고가 가족이나 고용인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생긴 때를 면책사유로 정하는 예가 많이 있는데, 이러한 경우 그 보험약관의 효력이 문제된다.

나. 학설과 판례

이에 관하여 학설로는, ① 이 이론을 적용하여 보험자의 면책을 인정하는 견해(1설),80) ②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이 이론을 받아들일 수는 없으나, 피보험자 등과 밀접한 생활 관계에 있는 가족이나 고용인 등에 의한 보험사고의 발생에 피보험자 등의 공모·교사 또는 방조와 같은 책임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면책된다는 견해(2설),81)  이 이론의 적용을 부인하는 견해(3설)82) 등이 있다. 판례는 아직까지 정립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83)

다. 사견

피보험자 등과 밀접한 생활 관계에 있는 가족이나 고용인이 보험사고를 일으키고, 그 보험사고 발생에 피보험자 등이 적극적으로 공모·교사 또는 방조한 경우까지 보험금을 지급한다면 이는 보험제도의 선의성에 반한다. 면책 조항의 해석에 있어서는 면책사유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점에 비춰볼 때, 피보험자 등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개재되지 않은 경우에도 보험자의 면책을 확대하는 견해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 없다. 따라서 2설이 타당하다. 


3. 전쟁위험 등으로 인한 보험사고


가. 보험사고가 전쟁 기타의 변란으로 인하여 생긴 때는 당사자 간에 다른 약정이 없으면 보험자는 보험금액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상법 제660조). 전쟁 기타의 변란으로 인한 사고는 위험 산정의 기초로 된 일상적인 사고가 아니고, 또 보험사고 발생의 빈도나 그 손해 정도를 통계적으로 예측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통상의 보험료로는 그 위험을 인수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한 것이다. 피보험자 등의 고의 사고에 대한 보험자의 면책이 도덕적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것인 반면, 이것은 보험단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전쟁이라 함은 국가 간의 교전 상태를 말하며, 선전포고가 있느냐 없느냐는 묻지 않는다. 변란은 내란·폭력혁명·폭동·소요 등과 같이 통상의 경찰력으로는 치안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로 전쟁에 준하는 비상사태를 말한다.

나. 상법은 지진, 분화, 태풍, 홍수, 해일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사고에 대해서는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일상적인 위험이 아니라는 점에서 당사자의 특약이 없는 한 보험자의 보상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

다. 상법 제660조는 임의규정이므로, 당사자는 특약에 의하여 전쟁위험(war risk)을 인수하는 것은 상관없다. 이러한 보험을 전쟁위험보험이라고 한다.


보험법 저자🔸임용수 변호사



71)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를 다음부터 '피보험자 등'이라고 한다.
72) 고의의 예로는, 생명보험에서 피보험자의 자살, 상해보험에서 자해행위, 화재보험에서 방화 등을 들 수 있다.
73) 대법원 2001. 4. 24. 선고 2001다10199 판결은 「책임보험은 피보험자의 법적 책임 부담을 보험사고로 하는 손해보험이고 보험사고의 대상인 법적 책임은 불법행위책임이므로 어떠한 것이 보험사고인가는 기본적으로는 불법행위의 법리에 따라 정해야 할 것인바, 책임보험 계약당사자 간의 보험약관에서 고의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는 보험자가 보상하지 않기로 규정된 경우에 고의행위라고 구분 짓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구체적인 정신능력으로서의 책임능력이 전제되어 있다고 볼 것이어서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한 손해'에 해당한다고 하려면 그 피보험자가 책임능력에 장애가 없는 상태에서 고의행위를 하여 손해가 발생된 경우이어야 한다」고 판시하여 피보험자가 사고 당시 심신미약의 상태에 있었던 경우 사고로 인한 손해가 '피보험자의 고의로 인한 손해'에 해당하지 아니하여 보험자가 면책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74) 동지: 서울고등법원 1988. 12. 6. 선고 88나25721 판결; 양승규, 142면; 김성태, 269면.
반대견해로, 서울중앙지방법원 1999. 6. 23. 선고 99나23368 판결은 폭행치사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은 경우 「고의는 원인 행위에 존재하면 되는 것이지 결과 발생에 대해서까지 인식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판시한 바 있다.
75) 대법원 2001. 3. 9. 선고 2000다67020 판결; 대법원 2004. 12. 10. 선고 2004다31401 판결.
76) 대법원 2004. 8. 20. 선고 2003다26075 판결.
77) 대법원 2000. 7. 4. 선고 98다56911 판결은 「상법 제732조의2의 규정은 계약자 측의 중과실로 인한 사고에 있어서 회사의 면책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소비자인 인보험의 계약자 측, 특히 생명보험의 수익자로 되는 유족의 생활보장을 도모하는 데에 그 입법취지가 있으므로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며, 중과실과 경과실의 구별은 상대적이고 그 경계가 모호한 데다가 계약자 측이 현저히 약자의 지위에 있어 보호의 필요성도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 법률조항에 의하여 자유를 제한하는 정도는 상반되는 법익과의 균형을 해할 정도로 과도하여 입법재량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할 수 없어 회사의 영업의 자유, 회사와 계약자 사이의 계약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할 수 없으며, 중대한 과실이라는 것은 그 태양과 범위를 한정할 수 없고, 위험이 상존하는 현대생활의 복잡성에 비추어 볼 때 중대한 과실로 인한 보험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계약자와 그렇지 않는 보험계약이라는 분류가 가능하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설령 그러한 분류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중대한 과실로 인한 사고 발생에 관한 개인차는 보험단체 구성원 간의 동질성을 해할 정도는 아니고, 계약자 측은 중과실로 인한 사고에서도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같은 취급을 받으므로 위 규정이 계약자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어 위 조항을 헌법상의 평등권이나 영업의 자유 등에 위반된다고는 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대법원 1999. 8. 24. 선고 99다24263 판결은 「인보험은 정액보험으로서 유족 또는 피해자 본인 등의 생활보장적 성격이 강하므로 주관적 용태에 따라 보험금 지급여부가 좌우될 필요성이 없으므로 입법자는 인보험과 손해보험을 구별하여 인보험의 경우에 한하여 중대한 과실로 인한 보험사고 발생의 경우를 면책사유에서 배제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상법 제732조의2에 의한 회사의 영업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하여 기본권 제한에 요구되는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부합한다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78) 대법원 1998. 3. 10. 선고 97다20403 판결.
79) 고용된 자를 말한다. 피용자(被用者)라고도 부른다.
80) 최기원, 224면.
81) 양승규, 144면; 김성태, 279면; 이기수, 97면; 채이식 501면; 손주찬 546면.
82) 서·정, 383면; 강·임, 626면.
83) 대법원 1984. 1. 17. 선고 83다카1940 판결은 「보험계약의 보통약관 중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피보험자와 세대를 같이 하는 친족 또는 고용인이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손해에 대해서는 보험자가 보상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면책조항은 그것이 제3자가 일으킨 보험사고에 피보험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개재되지 않은 경우에도 면책하고자 한 취지라면 상법 제659조, 제663조에 저촉되어 무효라고 볼 수 밖에 없으나, 동 조항은 피보험자와 밀접한 생활관계를 가진 친족이나 고용인이 피보험자를 위하여 보험사고를 일으킨 때는 피보험자가 이를 교사 또는 공모하거나 감독상 과실이 큰 경우가 허다하므로 일단 그 보험사고 발생에 피보험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개재된 것으로 추정하여 보험자를 면책하고자 한 취지에 불과하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며, 이러한 추정규정으로 보는 이상 피보험자가 보험사고의 발생에 자신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개재되지 않았음을 입증하여 위 추정을 번복할 때는 위 면책조항의 적용은 당연히 배제될 것이므로 위 면책조항은 상법 제663조의 강행규정에 저촉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여 2설의 입장에 서 있다.
반면에, 대법원 1998. 4. 28. 선고 97다11898 판결은 「동산종합보험보통약관 소정의 '보험계약자, 피보험자(법인인 경우에는 그 이사 또는 법인의 업무를 집행하는 그 밖의 기관) 또는 이들의 법정대리인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생긴 손해'라는 면책조항이 적용되기 위하여는 '보험계약자, 피보험자(법인인 경우에는 그 이사 또는 법인의 업무를 집행하는 그 밖의 기관) 또는 이들의 법정대리인'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생긴 손해에 한하여 면책되는 것이지, 위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 또는 이들의 법정대리인에게 단순히 고용된 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생긴 손해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여, 2설을 취하는 것인지 3설을 취하는 것인지에 관하여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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