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계약의 개념



1. 서설

보험계약은 개개의 보험계약의 특수성에 따른 독자적인 법리가 형성되어 있어 그 종류별 법리가 다양하나, 아직까지 그 개념 등에 관한 정교한 이론이나 판례가 형성되어 있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 최근에는 치명적 질병(CI)보험, 변액보험 등 신종 보험계약과 관련하여 분쟁이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향후 새로 개발될 신종 보험계약에 관한 다양한 법리가 다수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들 모든 보험계약에 공통된 정의를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하여는 학설이 나뉘고 있다. 아래에서 보험계약의 개념에 관한 종전의 주요 학설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보험계약의 개념에 관하여, 학설은 ①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생긴 손해를 보상하는 계약이라는 손해보상계약설, ② 우연한 사고의 발생으로 인하여 생기는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의 경제적 수요를 충족시킬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계약이라는 경제수요충족설, ③ 보험자가 우연한 사고 발생의 개연율에 따라 산출된 보험료에 대하여 그 사고가 발생한 때 일정한 금액을 상대방에 지급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이라는 기술설,1) ④ 보험자가 불확정한 계약상의 사고가 발생한 경우 그 사고로 인하여 생긴 손해를 보상하거나(손해보험) 또는 약정한 금액을 지급할 것(생명보험)을 약정하는 계약이라는 이원설(선택설),2) ⑤ 특정한 우발적 사고가 발생한 때 약정한 취지에 따라 재산적 급여를 할 것을 약속하는 계약이라는 재산급여설3) 등이 대립하고 있다. 생각건대, 다양한 보험계약의 종류만큼 보험계약마다 그 특성이 다르므로 보험계약에 대한 일률적인 개념 정립은 어렵다. 따라서 어느 하나의 학설에 의하여 보험계약의 개념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보험계약이란 보험계약자가 우연한 사고에 대비하여 사고 발생 시 경제적 수요를 충족시킬 목적으로 가입하고 보험자는 대수의 법칙에 근거하여 보험계약자로부터 보험료를 납입받고 우연한 사고가 생긴 때에 일정한 보험금액 기타의 급여를 지급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이라고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


2. 보험계약의 성질


가. 불요식의 낙성계약성

보험계약은 계약당사자인 보험자와 보험계약자 사이의 의사 합치에 의하여 성립하고 특별한 방식을 요하지 않는 불요식의 낙성계약이다. 즉 보험계약은 요식계약도 요물계약도 아니다. 의사 합치만으로 계약이 성립하므로 보험료의 수수는 계약의 성립과는 무관하다. 특별한 방식을 요하지 않으므로 반드시 서면으로 체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4)  

실제로는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일반적으로 정형화된 양식의 청약서가 이용되고, 보험계약이 성립하면 보험자는 지체 없이 보험증권을 작성하여 보험계약자에게 교부해야 하지만, 이것은 거래의 편의를 위한 것에 불과할 뿐이므로 이 때문에 요식계약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작성·교부되는 보험증권은 하나의 증거증권에 불과한 것이어서 보험계약의 내용은 반드시 보험증권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험계약 체결에 있어서 당사자의 의사와 계약 체결의 전후 경위 등을 종합하여 그 내용을 인정할 수 있다.5)

나. 유상·쌍무계약성

(1) 보험계약은 보험자가 보험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험금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고, 보험계약자는 이에 대하여 보험료를 지급할 것을 약정하는 유상계약이다. 즉 보험자의 급부의무와 보험계약자의 보험료지급은 서로 대가관계에 있다.

보험계약자의 보험료지급의무는 확정적인 의무인 데 비하여 보험자의 급부의무는 보험사고의 발생에 의하여 구체화되는 조건부의 불확정적인 의무이기는 하나, 위험단체 전체적으로 보면 보험자는 보험료에 대한 대가로서 위험을 부담하는 관계에 있다(위험부담급부설).6) 보험자의 위험부담과 보험계약자의 보험료는 대가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 보험자와 보험계약자의 두 의무는 서로 구속관계에 있기 때문에, 보험계약은 쌍무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보험계약에도 민법상의 쌍무계약에 관한 규정(동시이행의 항변, 위험부담)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지만, 상법 및 약관에 특별규정이 있기 때문에 민법이 적용될 여지는 거의 없다.7)

(3) 보험계약에서 보험자의 의무는 보험사고의 발생을 조건으로 하고 있지만 보험계약의 성립과 함께 그 계약의 효력은 완전히 발생하는 것이므로 보험계약은 조건부계약이 아니고 또 편무계약도 아니다.8) 다만 상법 제656조를 근거로 쌍무계약성은 초회보험료의 지급이 있은 후에 인정되는 것이므로, 초회보험료의 지급이 있기 전에는 쌍무계약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견해9)가 있다.

다. 상행위성(영업성)

(1) 보험의 인수를 영업으로 하는 때는 영업적 상행위에 속한다(상법 제46조 제17호). 따라서 영리보험에 있어서 보험자가 체결하는 보험계약은 상행위성이 인정되며 이를 영업으로 하는 보험자는 당연상인이 된다(상법 제4조). 보험계약자가 비상인인 경우에도 보험자는 상인이므로 원칙적으로 당사자 모두에게 상법이 적용된다.10)

(2) 상호보험은 영리보험자가 체결하는 것이 아니므로 상행위성이 없는 것이지만, 그 보험계약관계는 실질적으로 영리보험과 같으므로 성질에 반하지 않는 한 영리보험에 관한 상법의 규정이 준용된다(상법 제664조).

라. 계속계약성

보험계약은 보험관계가 일정한 보험기간 동안 계속적으로 존속되는 계속적 계약(Dauervertrag)의 성질을 가진다. 대체로 손해보험의 기간은 통상 1년이지만, 생명보험의 경우에는 그 이상의 장기간을 보험기간으로 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계속적계약의 특성상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가 특히 강조되므로, 보험료지급의무를 모두 이행한 보험계약자도 고지의무(상법 제651조), 각종 통지의무(상법 제652조, 제657조, 제722조), 손해방지의무(상법 제680조), 협조의무(상법 제724조 제4항) 등 일정한 보험계약상의 의무를 진다.

보험계약관계를 소멸시킴에 있어서도 장래에 향해서만 그 효력이 인정되는 해지를 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보험계약자가 계약 성립 후 2개월이 경과하도록 제1회 보험료를 지급하지 않으면 다른 약정이 없는 한 그 계약은 해제된 것으로 본다(상법 제650조 제1항).

마. 독립계약성

보험계약은 우연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하여 보험계약자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체결하는 독립계약이다. 다른 계약을 전제로 한다거나 다른 계약에 부수하여 체결되는 계약은 그 내용이 보험의 성격을 띠더라도 보험계약이 아니다. 그러나 독립계약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법률상 보험계약이 독립성을 가진다는 의미이고, 경제상으로도 이것이 다른 계약과 결합하여 또는 다른 계약에 부수하여 체결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11)

바. 사행계약성

보험계약에 있어서 보험자의 보험금지급 책임은 우연한 사고가 발생한 때만 부담하는 것이므로 보험계약은 사행계약으로서의 성질을 가진다. 이에 대하여 사행계약이라는 전형계약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법제 아래에서는 논할 실익이 없다는 견해(부정설)12)도 있으나, 보험계약은 보험자가 불확정한 사고의 위험을 인수하는 것이고 그 사고의 발생은 장래의 우연한 사건에 달려 있으므로 도박과 마찬가지로 사행계약성이 인정된다고 할 수 있다(긍정설).13) 그러나 도박의 경우에는 도박자가 선택의 결과 반드시 금전적 이익을 가지는 것은 아닌 데 대하여 보험계약의 경우에는 보험사고의 발생으로 피보험자 또는 보험수익자가 반드시 금전적인 이익을 갖게 되는 점, 도박은 선량한 풍속·사회질서에 반하여 법률상 허용되지 않으나 보험계약은 법률상 허용되고 있음은 물론 오히려 정책적으로 장려되고 있다는 점14)에서 차이가 있다.

사. 선의계약성

보험계약은 선의계약 또는 최대선의계약(contract of utmost good faith)이라고 한다. 보험계약의 선의성은 사법상의 일반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보험계약에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15)도 있으나, 보험계약이 사행계약성을 가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보험관계에 있어서는 다른 계약과는 달리 그 선의성이 더욱 강도 높게 요구된다.16)

이에 따라 보험계약에 있어서는 보험계약자에게 고지의무를 부담시키고 선의에 반하는 사기의사에 의하여 보험계약이 체결되었을 때는 보험계약을 무효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인위적인 보험사고에 대해서는 보험자가 면책되는 것으로 하여 도덕적 위험(moral risk)을 방지하려는 것도 보험계약의 선의성과 관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선의계약성을 반영한 제도를 나열하면, 예컨대 고지의무(상법 제651조), 각종 통지의무(상법 제652조, 제653조), 보험자의 면책(상법 제659조), 사기에 의한 초과보험·중복보험의 무효(상법 제669조 제4항 및 제672조 제3항), 손해방지의무(상법 제680조) 등을 들 수 있다.

아. 부합계약성

보험계약은 많은 보험계약자를 상대로 하여 대량으로 체결되고 그 방식은 동일한 내용의 정형화된 약관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이처럼 보험계약자는 보험자가 미리 작성하여 마련해놓은 약관에 의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할 것이냐, 아니면 계약 체결 자체를 포기하느냐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보험계약은 부합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 보험수익자는 약관 중 일부 부당한 조항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보험계약을 체결하여 부당한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 따라서 보험계약자 등을 보호하기 위하여 약관 내용의 합리성을 담보하기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보험업법은 금융위원회의 허가를 얻어서만 보험약관을 사용하도록 하고(보험업법 제5조 제3호), 상법은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상법 제663조), 보험약관의 교부·설명의무(상법 제638조의3)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약관규제법도 제6조 이하에 불공정약관조항에 관한 규정을 두어 보험약관을 규율하고 있다.


보험법 저자🔸임용수변호사


1) ​양승규, 80면; 채이식, 422면.
2) 정희철, 66면; 강․임, 538-539면.
3) 최기원, 67-68면.
4) 동지: 대법원 1996. 7. 30. 선고 95다1019 판결; 대법원 2000. 12. 22. 선고 99다1352 판결(서울고등법원 2001. 5. 16. 선고 2001나4530 판결); 대전고등법원 1997. 9. 11. 선고 96나8091 판결.
위 대전고등법원 1997. 9. 11. 선고 96나8091 판결은 「청약을 일반적으로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반드시 이를 서면으로 해야 한다는 등의 무슨 특별한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그 피보험자, 보험기간, 보험료 등의 가장 기본적인 사항을 특정할 수만 있다면 청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보험조건을 정한 상태에서 제1회 보험료를 지급한 것만 가지고도 이를 청약으로서 유효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5) 대법원 1992. 10. 27. 선고 92다32852 판결.
6) 최기원, 70면.
7) 동지: 최기원, 70-71면; 김성태, 107면; 강·임, 543면.
8) 동지: 양승규, 518면; 정찬형, 518면.
9) 손주찬, 상법(하), 2005(다음 면부터 '손주찬'이라고 한다), 498-499면.
10) 자동차보험에서 피보험자의 교통사고(불법행위)로 인한 보험자의 손해배상금지급채무의 지연이자에 대하여 연 5%의 민사법정이율에 적용되기 때문에 보험금청구소송에서도 5%의 지연손해금을 청구하는 경우가 많으나, 보험금청구소송의 경우에는 보험자가 보험업을 영위하는 상인인 이상 보험자의 보험업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보험금지급채무의 지연이자에 대하여는 다른 약정이 없으면 상행위로 인한 채무의 법정이율, 즉 상사법정이율인 연 6%의 지연이자가 가산되어야 한다. 다만 약관상으로 지연이자율을 정하고 있는 경우가 보통이므로 이에 따라 청구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11) 양승규, 88면.
12) 서돈각·정완용, 상법강의(하), 1996(다음 면부터 '서·정'이라고 한다), 356면.
13) 동지: 양승규, 86면; 손주찬, 500면; 강·임, 540-541면.
14) 정찬형, 519면.
15) 서·정, 356면.
16) 동지: 대법원 2000. 2. 11. 선고 99다49064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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