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수중 익사체로 발견된 중년 여성, 사망보험금 받을 수 있을까?


글 : 임용수 변호사


사람이 자기의 생명을 스스로 소멸시킬 수는 있지만, 생명 소멸의 결과와 정황만으로 그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게 가능할까요. 특히 우울증 치료제 복용으로 예기치 못한 거동을 보일 때는 그 결과가 치료제의 부작용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자유 의사에 의한 것인지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결과와 정황만을 놓고 확신을 가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많은 보험소송 사건들을 다루면서 느낀 점은 사람의 속마음을 안다고 확신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매우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50대 중반의 한 여성이 성수대교 남단 부근 한강 수중에서 익사체로 발견됐습니다. 그녀는 우울증으로 치료 중이었는데, 치료 약을 복용하면 현기증을 느끼고 몸에 힘이 빠지면서 거동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익사체로 발견되기 이틀 전 영동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과장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안정이 안 되고 움직이기가 힘들어도 산책을 하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성수대교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남편과 함께 강변 산책로를 거닐었고 저녁 때는 식료품이 떨어졌다고 해서 남편과 함께 갤리리아백화점에 들러 지하 식품매장에서 식료품을 구입했습니다. 또 헬스클럽에 갈 때 쓸 화장품도 샀습니다. 그 정도의 산책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듯했습니다. 

사고가 난 그날 아침도 그녀는 비슷한 일상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평소 산책하러 갈 때 입는 간편한 옷차림에 아파트 현관 열쇠만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 후로 감감무소식. 어느 누구도 본 적이 없고 행방도 알 수 없던 상태로 몇 시간이 지나서야 사고 장소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형사 사건의 미제 사건처럼.


어느 날 그녀의 아들인 이 모씨와 며느리가 사무실을 찾아왔습니다. 둘 다 점잖고 교양 있어 보였습니다.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더니 주변에 보험 전문변호사를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보험소송 경험이 많은 변호사를 찾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유형의 사건에 대해서는 처음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줬습니다.


법률상담을 마친 후 바로 그 자리에서 사건 수임 약정이 이뤄졌습니다. 곧바로 소장 작성에 들어갔고, 이씨를 대리해 사망보험금을 청구하는 내용의 소장을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대략 한 달여가 지난 뒤에 보험회사1)로부터 답변서가 왔습니다. 사망한 그녀가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강물에 익사한 것으로 볼 증거가 없고, 오히려 강변에서 투신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상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 답변 내용의 요지였습니다.

이에 대해 이씨의 소송대리인이었던 본 변호사는 유사한 사안에 관한 판례 등 참고자료를 적절히 제시하는 한편, 외형적으로 볼 때 실족에 의한 익사의 가능성이 있었다고 인정되는 이런 유형의 사고에 대해서는 보험회사 쪽에서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한 사망이라는 면책사유를 주장·입증할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논리를 폈습니다. 그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준비서면을 통한 치열한 공방이 오고갔습니다.


2002년 9월에 시작한 소송이 거의 1년에 다다를 무렵 법원은 직권으로 "보험회사는 이씨 측에게 78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화해권고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씨의 청구 금액 1억 원 중 78%인 7800만 원을 상해사망보험금으로 지급하라는 취지였습니다. 법원의 화해권고결정에 대해 보험회사는 승복할 수 없다며 곧바로 이의신청을 냈고, 다음날 이씨 측도 이의신청을 냈습니다.

이에 따라 법원의 변론재개결정이 있었고 서면을 통한 논리 다툼이 다시 진행됐지만,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난 뒤에 결국 양쪽 모두가 기존의 화해권고결정 내용에 승복한다는 취지에서 이의신청을 취하하기로 했습니다. 기나긴 법정 공방이 끝나 사건이 종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재판부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재판에서의 '최악의 화해가 최선의 판결보다 낫다'는 법률 격언을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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